[창업이야기] 16. 영어, 1년간 배운 것

영어

Fomola에서 일하기 전 마지막으로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한 건 고등학교에서 수능을 위해 공부했을 때이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교양과목으로 영어를 공부하긴 했지만 나는 소위 말해 스펙을 쌓기 위해 토익/토플 시험을 준비하거나 영어를 공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을 다시 꺼내서 썼던 정도이지 새로 습득한 것은 거의 없었다. 다시 말하면 내 영어 실력은 고등학교 시절에 멈춰져 있었다. 이전 회사에도 외국인이 상당히 있어서 가끔 인사나 대화를 했지만, 짧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Fomola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일상 대화, 회의, 일정관리, 이메일 등 모든 소통이 영어로 이루어졌다.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등 모든 스킬이 부족했다.

처음 이메일을 작성할 때는 간단한 문장 쓰는 것조차 힘들었다. 사용하고 싶은 뜻의 단어를 검색하고 문법을 고려해서 문장을 썼는데, 짧은 메일을 작성하는데도 30분이 넘게 걸리기 일쑤였다. 또 그때그때 빠르게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그런 경우 사무실에 모여서 전체 회의를 했다. 대화가 오고 가는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대략적인 내용은 파악됐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동료들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일의 흐름을 끊게 되어 대화 내용을 다 못 알아들은 채 넘어갈 때가 많았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영어는 많은 어휘를 알아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PMP를 이용해 라이온 킹 영화를 15회 이상 보면서 모든 대사를 외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일과 관련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퇴근 후 집에서 영어 문법책을 매일 한과씩 공부하고 토플 쓰기 책에 있는 문장을 매일 10개씩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렌스에게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전에 이야기했다시피 렌스는 EBS 교육방송 영어강좌에 출연하고, 영어교재 출판, 아이들 홈스쿨링 등 한국인에게 영어를 교육한 풍부한 경험이 있다. 렌스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냥 일하면서 배우라고. 따로 영화를 보거나 뭘 공부하지 말고 일을 하면서 영어를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이 늘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덧붙여서 영어 스킬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중 어떤 스킬을 향상시키고 싶은지 잘 구분하라고 이야기해줬다. 만약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으면 읽거나 쓰는 것을 연습하지 말고 말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렌스의 조언대로 영어 공부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하지 않고 최대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했다. 일하면서 듣게 됐던 단어를 나중에 찾아보고, 출퇴근 길에 여러 문장을 머릿속으로 만들어보고 문장을 만드는데 필요한 단어나 숙어를 익혔다. 매일 저녁 회의 전에 오늘 무슨 일을 했고, 일의 진행상황이 어떤지를 우리 말로 정리하고 그것을 영어로 미리 생각으로 정리한 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했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니 영어의 모든 능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된 됐다. 그래도 영어 실력 향상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듣기 능력은 업무시간 내내 자연스럽게 많이 듣게 되니 좋아졌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들려서, 모르는 것은 나중에 대화가 끝나고 찾아보고 익혔다. 읽기 또한 이메일과 여러 개발 관련 자료를 읽는 등 그때그때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읽은 것이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영어로 된 자료를 읽는 것이 부담되지 않고 편한 정도 까지  익숙해졌다. 쓰기는 이메일을 작성하고 여러 문서를 작성하게 되면서 나만의 기본 문법이 생기고 그 안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기는 처음에는 대화할 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영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문장도 다 끝맺지 못한 채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중에는 문법도 틀리고 단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도 일단 관련 단어를 이용해 문장을 끝까지 완성하고 나중에 다시  복기하는 방법을 반복하다 보니, 말하기 능력도 좋아졌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다 수월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서 동료들과 일하면서 처음으로 열등감을 느꼈다. 그 전까지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를 제외한 세명은 아이디어도 잘 내고 자신의 생각도 잘 표현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영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팀의 대화와 일의 진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져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한동안 마음이 위축돼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게 된 것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부터이다.

“나는 질그릇 같은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보석을 담아주신 것이다. 그래! 세 사람은 나보다 똑똑하고 뛰어나다. 세  사람으로부터 열심히 배우자! ”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비록 열등감을 느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대신 자존감을 선물로 얻었다.

이후로 나는 보다 편안 마음으로 일했다. 대화하는 가운데서도 전체 대화 중에는 선택적이었지만 1:1로 대화하는 경우 대화 내용을 정확히 다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현을 망설이지 않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인해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년간 배운 것

비록 물질적인 것은 많이 얻지 못했고 창고 같은 사무실에서 에어컨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로 1년을 지내야 했지만, Fomola에서의 1년은 내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성공의 경험을 했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창업하면 실패를 빨리해보는 게 도움이 되고, 그 실패를 다음번의 성공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으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공의 경험도 그에 못지않은 큰 자양분이라고 생각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했더니 성공을 했다는 그러한 성공 모델,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음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그 모델과 경험 중에 좋은 것을 반영해서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운이 없었으면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운이란 좋은 사람을 동료로 만난 것이다.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하면서 일적인 것뿐만 아니라 삶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게 되고 내적으로 많이 변화하게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보다 가족을 우선해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에는 일이 많고 바쁘면 가족과의 약속이나 행사는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가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밖에 그동안 배운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봤다.  

1. 외형과 가치 : 전에는 겉으로 보이는 환경이나 시설을 그곳에 속한 사람이나 조직의 능력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외형이 그것의 가치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시설이나 환경보다 사람들 간의 마음, 열정, 팀워크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2. 프로의식과 장인정신 :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모든 힘을 모아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려는 과정에서 이러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습득하게 됐다.  

3. 프로젝트 리딩 및 관리능력 : 렌스의 관리를 지켜보면서 “이렇게도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고 관리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직접 이런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이끌거나 관리한 적이 없어서 이 능력이 내면화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내가 경험한 것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리딩 및 관리 관련 핵심 키워드를 꼽는다면 애정과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야 할 여러 일에 대한 예상시간을 파악하고 담당자에게 그 일을 할당하고, 지속적으로 진행상황을 점검하는 것에서 관리가 그치지 않았다. 렌스는 우리가 일을 하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해주고 대안을 찾으려 노력했다. 또 오래 걸리는 일을 마쳤을 때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을 때 그리고 그냥 열심히 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 렌스는 항상 “정말 잘했어 주성!” 혹은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라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렌스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렌스의 빠른 피드백과 칭찬, 격려로 인해 우리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열정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리가 가진 능력의 100%, 120%로 일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열정을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좋은 성과물을 내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 생각한다. 

4. 프로그래밍 스킬(유연하고/읽기 쉽고/변경하기 쉬운 코드 작성 능력, 협업) : 동료들과 협업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소스를 분석하고 따라해 보고 많은 코드를 작성하면서 프로그래밍 스킬이 향상되었다. 양질전이 – 양이 달라지면 질이 달라진다. 나는 이 말은 진리라 생각한다.  

5.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 : 서로를 존중하면서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훈련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향상되었다. 나는 이것이 기술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더 좋을 수도 있다.”라는 가정이 없다면 가장 좋은 결정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6.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들 (신뢰, 솔직, 정직, 소통, 존중, 배려, 체계, 비전 제시 등)  

7. 영어 스킬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8. 아이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방법 : 따로 떨어진 사무실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 렌스의 집에서 일한 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사랑 표현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 가정에서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렌스의 집에서 일하면서 렌스가 아이들을 양육하는 방법을 직접 봄으로써 아이를 어떻게 사랑으로 양육할지에 대한 모델을 하나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정말 커다란 선물이었다.  

9. 생각하는 능력과 창의력 : 계속해서 나의 생각을 물어보고 말할 기회를 얻게 되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생각하는 능력과 창의력이 향상되었다.  

10. 인내와 믿음 : 가치 있는 모든 일에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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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 카카오모빌리티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얻은 경험과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작성된 내용이며, 제 경험이 회사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일 * 리더의 변화가 회사 분위기를 바꾼다. * 재직 중 CEO가 한 번 교체되었고, 그 후 CTO를 비롯한 여러 리더들이 함께 교체되었습니다. * 리더가 바뀌니 마치 다른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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